괜찮은 척 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

괜찮은 척 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

언제부턴가 익숙해진 말

괜찮아요.
그 말을 너무 자주 하다 보니,
이젠 정말 괜찮은 건지,
아니면 그냥 그렇게 말해야 해서 그러는 건지
나조차 헷갈릴 때가 있다.

사실은 피곤하고, 사실은 울컥하고,
사실은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은 날도 있는데
누가 물어오면 나는 습관처럼 웃으며 대답한다.
“응, 잘 지내.”

그건 어쩌면,
누군가의 걱정조차 부담스러워지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괜찮지 않다고 말하는 순간
쏟아질 말들과 시선들이 더 버거워서.

고요한 공간 안에서야 비로소

집에 도착해서 문을 닫고
불을 켜지 않은 어두운 방 안에 앉는다.

창문 밖에서 들려오는 약한 바람 소리,
스탠드 조명 하나, 그리고 향초 하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소리도 켜지 않고,
그저 가만히 앉아 있는 시간.

그제야 숨이 돌아오는 기분이다.
그 누구에게도 웃어 보일 필요 없는 이 방 안에서
나는 비로소 나 자신이 된다.

그 공간에는 기대도 없고, 설명도 없다.
오늘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묻지 않고,
기분이 왜 그런지 캐묻지도 않는다.

향초를 켜고 숨을 고르는 이 시간은
언젠가 ‘향이 머무는 방’이라는 말로 정리된 적이 있다.

혼자인데도 안심이 되는 순간들

예전에는 혼자 있는 시간이
왠지 모르게 쓸쓸하게 느껴졌는데,
이제는 혼자 있는 시간이
세상에서 제일 솔직해질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침대에 앉아 가만히 음악을 들을 때,
차를 한 잔 내려놓고 책을 펼쳤다가
한 페이지도 넘기지 못하고 그냥 멍하니 있을 때,
나는 그런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 순간,
“아, 나는 오늘도 나답게 잘 살아냈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이런 감정은
‘혼자 있는 시간이 나를 회복시키는 시간’이라는 말과도 아주 닮아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

무언가를 해야만 가치 있는 하루라는 생각을
언제부턴가 내려놓기 시작했다.

쉴 땐 쉬고,
멍하니 있을 땐 그대로 있고,
밥을 대충 먹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런 하루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공간.

그렇게 나는,
‘나를 위해 밥을 차리고’,
차를 내리고,
말이 필요 없는 나만의 하루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 방 안에서는 괜찮은 척을 하지 않아도 된다.
슬픈 날이면 그냥 누워 있어도 괜찮고,
기분 좋은 날이면 창문 열고 바람을 느끼면 된다.

스스로에게 묻는 말

괜찮은 척이 아니라
진짜 괜찮아지고 싶은 날들이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조용한 방 안에 들어와 앉아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는다.
“너, 정말 괜찮아?”

아무 대답이 없어도 좋다.
그 말 하나 던졌다는 것만으로
이미 나는 나를 꽤 많이 아끼고 있다는 증거니까.

그리고 언젠가,
진짜로 괜찮아졌다고
내가 내게 대답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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